덕암 칼럼 분단보다 더한 분열
2026.09.17 14:20:34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는 종족 번식의 원인이 있고 그 과정에는 다양한 생리적 현상이 동반되는데 남대천 연어의 경우 태어난 곳이 강릉이지만 태평양을 돌고 돌아 다시 회귀본능에 의해 온몸이 갈라지더라도 알을 낳기 위해 남대천을 찾는다.
반면 독사의 경우 알을 낳아도 태어난 새끼 뱀이 어미 뱀을 잡아먹고 그 영양분으로 번식과 성장을 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어떤 식이든 멸종과 신생종이 순환하면서 생태계가 유지된다.
그 많은 생물 중 가장 우수한 인자와 기능을 지닌 것을 감히 인간이라고 단정한다면 오만일까 오류일까. 생태계란 먹이사슬의 구조를 갖고 약육강식의 생리에 따라 형성되는데 최 상위 자리를 석권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멸종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등장은 종교적 주장에 의한 탄생과 진화론에 의한 탄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찌하든 진화 과정에 역사라는 관점에서 기록된 내용을 근걸 하자면 끊임없이 전쟁이나 질병, 자연재해로 인해 멸족과 혼족을 거듭해 온 바 있다.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이족과 혼족될 만한 여건이 열악한 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지녀왔지만 글로벌 시대에 즈음하여 국제결혼은 물론 그런 주장도 신빙성을 잃고 있다.
특히 끊임없는 외세침략으로 인한 공녀, 위안부, 기타 숱한 겁탈로부터 지켜지지 못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단일민족이라고 우기기에는 다소 결함이 있다고 본다. 모두 못난 남자들, 약한 국력으로 인해 당사자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여성들의 인권이 찬탈당한 과거였다.
지금은 쳐다만 봐도 수치심을 느끼면 범죄가 되고 언어폭력이나 기타 잘못 스치기만 해도 성추행의 여지를 의심받을 만큼 여권(?)이 신장 되었지만 아직도 한국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상당한 편이다.
이는 제도적 개정안도 중요 하지만 그 보다 비현실적인 확장으로 인한 현실적 그늘막이 상반되는 현상을 빚고 있다.
가령 가전제품의 발달로 인한 편리함이 여성들만의 고유영역이었던 취사와 가사가 남성들도 공유할 수 있음에 따라 비혼주의자가 증가하고 과거처럼 아내가 아니면 밥을 굶은 일이 없다는 점이다. 마트에서도 완제품이나 가공식품의 다양화, 배달음식 위주의 식생활습관으로 인한 생활패턴 변화가 그러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람이 살면서 먹고 자고 배설하는 개인적 3대 본능이 채워지면 사회 최소단위인 가정에 대한 경제공동체, 생활공간에 대한 공유 등 본질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러다 자녀들이 성장하면 분가하고 행정 서류상 세대 분리가 이뤄지면 세대주가 변경된다.
그러다 기존의 가장이 노부모가 되고 자녀는 그 자리를 맡아 가장이 되며 아래로는 출생신고했던 자녀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가족 구성원의 변화인데 가령 가장이 양육하던 자녀가 사고나 질병으로 의료비가 발생하면 당연히 가장이 지급의무와 책임을 갖게 된다.
물론 자녀가 사고를 치면 합의금도 물어줘야 하고 야단도 치고 훈육의 권리도 갖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비혼주의 만연과 함께 혼인 연령도 늦어짐은 물론 경제적으로 독립되다 보니 자연스레 기존 틀에서 모든 기준이 분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분열이다.
출발은 분열이지만 대화의 부재로 인한 오해와 불신이 쌓임에 따라 절연으로 이어져 수년 또는 수 십년 이상 소통을 끊었다가 사망 통보를 받은 자식들이 모여 혹시라도 남은 유산으로 법적 소송을 불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고 있다.
여기서, 그나마 장례식을 치르려고 부고를 띄우려 해도 찾아올 조문객이 없으니 치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족장으로 조촐히 화장해서 인근 추모공원에 모시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자식들 간에 서로 내지 않으려고 미루다 대충 아무 곳이나 뿌려서 제사 지낼 일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집에서 키우던 개는 부모보다 더 성대히 장례를 치르고 일부 애완견 장례 전문회사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이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각설하고, 사람이 살아생전 안 해도 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으며,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고, 출생한 자식의 뒷바라지이며 작고한 부모의 초상이다. 하지만 부득이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살면서 본의 아니게 죄를 지어 옥에 갇힌 경우와 병을 얻어 누워 있는 경우다.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탈출한 북한의 탈북민들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그걸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으로 표현 하지만 분단보다 더 살벌하고 비윤리적이며 무책임한 것이 분열이다.
분단이야 헤어진 가족들 간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열은 각자의 자의적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간과한 것이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장기적 이별이 고착화 되어 종래에는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3만 5천 여명의 탈북민이 정착하여 살고 있으며 대부분 북한에 가족이나 친척이 생존해 있어 사실상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에는 재소자 인원이나 중환자실 입원환자를 빼고도 분열로 갈라진 채 세월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이 상당하다.
설령 함께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명절 때나 볼까 말까 한 관계, 전자는 현실적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후자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는 무형의 사회악이다. 어떤 존재든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다만 많은 부분이 돈 때문에 발생했음에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진정한 존재 가치를 잃고 나서야 느낄 수 있게 된다. 어쩌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가 돈방예의지국이 되었는지 통탄할 일이다. 이제 일주일 남짓 남은 추석, 돈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된 분열의 사람들은 어떤 명절을 보낼까.
그리고 돈이 생겨도 이미 지나버린 세월속에 회복될 수 없는 관계는 무엇으로 수습할 것인가. 분단은 국가간의 문제이니 해결될 수 있어도 가족 단위의 분열은 답이 없다 각 개인간의 일이므로 딱히 해결사가 없기 때문이다.
덕암 김균식
sekcme21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