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 가요제를 마치며
2026.08.03 14:46:54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부산 송도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제 22회 현인 가요제가 성황리에 치러졌다.
15개 팀이 최종예선을 거쳐 5개팀이 본선에 진출한 이번 가요제는 1980년대를 풍미한 정수라, 허찬미, 도시아이들 조영남, 서지오 등 초대가수들의 축하 공연과 함께 미스터 트롯 2 선을 수상한 박지현을 비롯해 2025년도 현인 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신현지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도 더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된 이번 가요제는 전국에서 많은 젊은 무명가수들이 도전하여 가수의 등용문이라는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
현인 가요제는 국내 가요제 중 상당한 인지도와 함께 우수한 가수 배출로 지금까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고 현인 선생의 음악 세계를 기리는데 일조해 왔다.
해마다 약 8만 명이 이상이 다녀가는 송도 해수욕장의 현인 가요제는 대상에 상금 1,000만원과 함께 많은 무명 가수들이 도전하는 꿈의 무대로 각광받고 있다. 이와 관련 부산 시내에는 이미 보름 전부터 거리마다 현수막과 배너 깃발이 대회를 알리는 홍보전을 펼쳤고 무대가 마련되는 송도 해수욕장은 7월 30일 초 대형 전광판과 각종 시설물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1일 경선과 2일 본선의 무대는 송도 해수욕장 전체를 들썩이는 음악과 함께 많은 관광객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필자가 가요제를 주최, 주관한 한 (사)한국연예예술인협회와 인연을 맺은 지는 약 12년 전인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예술과 언론이 상호 간의 공존을 추구했던 화합을 계기로 시작된 업무협약은 지속적인 홍보와 함께 각종 행사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흔적들이 상당했다.
한국의 문화 예술은 시간이 갈수록 첨단 디지털화 되었고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 시장이 더욱 뜨겁게 인기를 끌었다. 음원에 대한 규제도 그렇지만 과거마냥 LP판 이나 음반 판매량이 수익을 좌우지 하던 시대도 지났다. 특히 가수들의 설 자리도 점차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이후 관객들은 다시 객석을 돌아오지 않았다.
종편들의 트롯 열풍은 안방극장의 새로운 장르를 이끌어 냈으며 혼술, 혼밥, 무관중에 익숙해진 대중문화의 트랜드변화는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트롯 열풍으로 인해 달라진 가요계의 역 피라미드는 일부 특별한 최정상만 빼고 죄다 설 자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최정상 인기가수와 중견가수, 신인가수와 무명가수 등 계층별 구분도 사라졌다. 최고가 아니면 백지다. 싸이, 임영웅, 나훈하, 방탄소년단 등 정상급이 아니면 관객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B급 가수도 고정 관객이 아니면 조회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조화는 모든 계층들이 다양하게 공존할 때 소비자들도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것인데 도 아니면 개로 나뉘어진 대중문화의 삭막한 장르는 이제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중들은 방송국이 제작해 낸 화려한 무대조명이나 연출진들의 기획에 따라 보는 견해도 달라진다.
언제부턴가 무명가수들의 생계를 유지하던 라이브 카페나 밤무대 시장이 조금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향기기들이 영상과 함께 자리 잡았다. 일명 딴따라들이 짐을 싸야 하는 시대, 특정 수입도 없이 손님들의 팁에 의존했던 밤무대의 먹이사슬은 빈곤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과거 술상에 젓가락만 두들겨도 신이 났던 육성시대가 가고 반주기에 의존하던 노래방 시대도 이제는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 특성상 신명과 흥은 감출 수 없었기에 동네마다 몇 개씩 운영되던 노래방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지만 갈수록 불경기에 호황을 누리던 그 시장마저 바닥을 치고 있다.
돌아켜 보면 우리 농악이나 풍어제도 그렇고 국악이나 민요도 본디 흥에서 시작됐다. 열정과 끼가 있었으니 어깨춤이 덩실 추어지는 것이지 강강수월래가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번 현인 가요제의 근원을 살펴보면 현인 선생의 생전 활동을 엿볼 수 가 있다.
신라의 달밤을 부르다 일본군의 눈치가 보여 부를 수 없게 되자 신라의 달바바바바 하며 기관총 소리로 울분을 대신하고 영어를 못 쓰자 럭키 서울을 부르려고 에스이오유엘 이라는 한글로 영어 가사를 불렀던 일화도 있다.
노래로 애국하던 시절, 배고픈 가수들이 애환을 달래려 낯선 타국에서도 노래로 고국을 그리던 시절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현인 가요제는 경제적 불황과 시대적 변화로 인해 설 자리를 잃은 무명가수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제공하는 무대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는 현이 가요제 말고도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등 많은 가요제들이 인기가수를 배출한 바 있다. 대중 문화예술은 스포츠와 달리 일상 생활속에 자연스레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접근성이 있다. 힘들 때 노래로 달래고 신날 때도 노래로 흥을 돋운 과거가 있다.
정치가 국민을 힘들게 했다면 그 힘듦, 노래로 풀어왔다. 어려운 경제가 삶을 괴롭게 했다면 막걸리 한잔에 돈 들어가지 않는 대중가요 한 구절로 애환을 달랬다. 가사에 담긴 공감대로 80년이나 지난 전쟁터 어느 무명용사의 희생도 그릴 수 있었고 듣도 보도 못한 1.4 후퇴의 난장판도 엿볼 수 있었다.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도, 부모와의 그리움도, 모드 담을 수 있는 대중가요는 특정 가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천만 국민 모두가 함께 자연스레 공감해야할 문화이자 쉼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려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성도 당연히 있으며 특정 가수의 우월적인 군림보다 피라미드 형태의 무명가수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기반을 다져 줄 때 이를 공유하려는 국민들에게 선택의 폭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가수다.
못한다고 빼면서도 막상 마이크만 주면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게 대중가요다. 동네마다 노래자랑도 매월 개최하고 상품이나 상금도 넉넉히 주어 신나는 대한민국으로 만드는 일도 필요하고 외국의 거리 마냥 무명가수들이 누구든 기타치고 악기연주로 노래까지 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조성도 필요하다.
이제 누구든 모금함을 두고 노래해도 그게 구걸이 아니라 문화 활동임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시대적 변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무명가수에 대한 정부의 예산지원도 다양한 방면으로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인가요제의 활성화는 그 어떤 관광 자원보다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덕암 김균식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