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행복한 나라를 꿈꾸며
2026.06.09 09:39:20

여러분은 행복이 기준이 무엇인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두 가지 취미나 낙이 있어야 한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나 어떤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가령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면 잔액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지듯 만족할 수 있는 금액에 따라 있어도 불행하고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통상 돈 빌리러 다니지 않을 정도, 애경사 챙겨주며 여행 다닐 정도면 된다는 사람과 수십억이 있어도 부족해서 어금니 물고 더 벌지 못해 안달이 아는 사람도 있다.
죽어서 갖고 갈 것도 아니면서 개도 안 물어가는 돈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네 욕심이다. 이쯤되면 사람이 돈을 버는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부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돈의 노예, 돈이면 사랑도 사고 정의도 사고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게 현실이며 때로는 지은 죄도 없어지고 없는 죄도 만들어 지는 세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지강헌 사건 이후 38년이 지나도 여전한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오늘은 행복한 나라를 꿈꾸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돈 없이도 행복할 방법, 일단 스마트폰을 줄여야 한다.
한 가지를 보면 늪에 빠지듯 정신을 빼가는 알고리즘의 협력이 그러하고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게 하는가 하면 누구나 소중한 시간을 다른 곳에 할애하지 못하도록 무형의 독재자가 영혼을 지배하게 된다.
물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편리함도 누리고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쓸데없는 흥미를 부추겨 소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가 하면 생활 속에 활력까지 상실케 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선거가 끝나고 아직 후유증이 전 국민 피부에 남아 있다.
중앙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이 그러하고 오랜 기간 정치판이 국민 들에게 보여준 여러 방면의 실망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감히 누가 나서서 바꿀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전은 다음 선거에서 표로 바꾸면 될 일이다. 그러니 낙을 찾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한가지 라면 노래와 춤이다.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사는 세상, 혹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놀고 있다거나 미쳤다거나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대안이 있을까 술 마시고 힘들어하고 한숨 쉬며 주저앉아 있다고 달라질 게 뭘까.
그리고 얼마간의 금전적 여유가 있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그것이 진정 편안한 것인가. 대한민국은 국민 절반이 가수다. 과거 대폿집의 술상 모서리가 부서지도록 노래 부르며 두들기던 젓가락 장단이 그랬고 시대가 바뀌어 노래방이 동네바다 호황을 누리던 것이 그 예라 하겠다.
못한다고 빼다가도 막상 마이크를 주면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사진 안 찍겠다고 버티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미소를 짓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그리고 춤이다. 노래가 귀만 즐겁게 한다면 춤은 눈과 귀와 몸 전체를 즐겁게 한다.
노래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케이블 방송사 들이 앞다투어 트롯 쟁탈전을 벌여 가요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춤도 과거 농사가 잘되어 흥겹게 추던 어깨춤부터 한잔 마시고 취하면 너도 나도 기준도 없는 율동으로 마구 흔들어 댄다.
일명 막춤, 그런 이유로 노래와 춤은 각박한 현실, 숨 막히는 스트레스, 건강해지고 심은 욕망을 모두 채워주는 현실적 비상구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치판이 국민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니기에 그들만이 리그가 있듯 국민만의 낙을 찾아야 한다.
노래와 춤의 대향연, 제 1회 대한민국 가무대전, 전 국민이 트롯 열풍에 들뜨듯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축제는 한국 연예예술인 총 연합회와 대한 생활체육회가 공동주관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삶의 활력소를 창조해 볼 예정이다.
전국적인 리그전을 거쳐 수 만 명이 참가자들이 경합을 벌이는 트롯과 댄스스포츠의 조합은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까지 초청하여 민간대사 역할을 꿈꾸고 있다. 민간외교란 자국민들간의 친교다. 각국의 노래와 춤이 벌이는 결전은 총으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과는 판이 다르다.
져도 행복하고 이겨도 미안한 축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얼룩진 과거는 조상들의 이해관계에서 발생 된 일이다. 현 세대까지 대 물림 받아서 억하심정을 겨눌 수 없는 것이고 그런다고 달라질 게 무엇일까. 물론 이런 축제로 모두 잊자는 것이 아니라 일단 대한민국 가무 대전으로 흥을 살리자는 것이다.
특히 춤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영어 못하면 바보 되듯 어쩌다 아프리카 원주민도 추고, 미국이나 영국의 상류사회도 추는 무도회의 우아한 춤을 한국인은 멀거나 보고만 있을까.
굳이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현재 기업의 비즈니스나 외교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에도 댄스는 골프나 술자리 보다 훨씬 가성비 높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온몸이 굳어버린 정치인들이 평소 사교 댄스 하나 제대로 배워 놓지 못해 어울리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는 일을 비일비재하다.
당초 흥겹게 어울리려는 댄스가 한국에서만 어두운 룸싸롱에서 질척거리는 성추행의 과정이 되고 춤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륜의 대명사로 각인됐을까. 인식의 변화는 이러한 측면에서 대중들의 공감대를 타고 바뀌어야 할 우선 과제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자와 낙선자가 한데 어울려 흥겨운 사교댄스 파티로 뒤풀이를 한다면 민주주의 축제가 제대로 막을 내렸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승자는 희희낙락하고 패자는 쓴 독배를 마시며 이를 가는 것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낙선자에게는 격려가 오가며 다시 하나 되는 모습으로 성숙된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덕암 김균식
심수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