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제주 4.3항쟁 역사는 흐른다.
2026.04.06 15:47:04

제주 4.3 항쟁이 발생한 지 72년이 지났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광복이후 6.25전쟁까지 이어진 과정에서 생긴 일인데 그동안 뭐하다가 지금와서 보상이니 기념사업회니 난리 부르스를 추는 것일까. 원인을 살펴보면 이념대립이나 갈등이 빚어온 사건인데 죄 없는 양민들이 대거 학살당했다.
좌익사상이 불러온 참극이지만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무기와 군복은 물론 상당한 군사 물자들이 제주의 운명을 달리하는데 사용됐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제주 시민들 중에서도 그런 무기들이 어디에 얼마나 보관되어있는지를 알기에 이를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서로가 의심하고 밀고하는 분위기에 죽창가를 부르며 살벌한 피바람과 밤이면 횃불을 든 무리들로 하여금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수 만명, 지금까지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들은 숱한 기록이 있지만 제주4.3 항쟁처럼 쉬쉬하며 묻어온 사건도 드물다.
간혹 다큐멘터리나 책자로도 발행되었지만 고인이 된 후손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량이 약한 탓인지 여전히 재조명되는 일이 제자리를 돌고 있다. 물론 거창 양민학살사건이나 대부도의 선감 학원사건,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 등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아픔이 묻혀진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원인과 진행 과정에서 적잖은 의구심이 지금도 제대로 파헤쳐지고 있지 않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속에 이런 아픔이 묻혀 있는 줄은 대다수 국민들이 모른다. 몰라도 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은 억울하게 불귀의 객이 된 양민들 입장에서 볼 때 힘 없는 사람은 인원수나 죽음의 형태에 따라 대충 묻어지는 반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의 각별한 지원은 천문학적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 대한 청산이 진실되지 않으면 미래에 같은 일이 일어나도 권력의 편향적 판단에 따라 묻힐 수도 과장될 수도 있기에 있는 그대로 확인해서 정리하는 것이 역사여야 한다. 특히 같은 사고도 세월호와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사건 처리를 보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선체 인양부터 해양체험관은 물론 전국적으로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고도 유족들에 대한 보상이나 각종 지원책은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방대했다.
세월호가 그런 과정을 거친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7시간 의문 제기부터 있지도 않은 테블릿 pc등 조장된 여론도 한 몫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명록에 작성한 “얘들아 고맙다”라는 기록은 지금도 무슨 뜻인지 의아심을 남기고 있다.
어쨌거나 최근 방송에 거론된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잔재물이 1년이나 지난 시점 발견되었다는 점은 어처구니를 넘어 얼마나 졸속으로 사고수습이 진행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 예라 할 수 있겠다. 어찌 희생자의 뼈가 사고현장에서 불과 얼마 되지도 않는 지점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철새도래지라며 전문가들이 극구 반대했음에도, 광주에서 이격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성이 없다는 반대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굳이 지역 정치인들의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공항 개항식에는 너도나도 축하 테이프를 절단하며 얼굴을 나타냈지만 정작 사고가 나자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인물이 없었다.
2022년까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하던 손창완 사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종지부를 찍은 이 사건의 진실은 제주4.3 항쟁처럼 수 십 년이 지나야 제대로 밝혀질까. 파헤쳐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언제까지 제주 4.3 항쟁이 유야무야 덮어지며 시간만 끌까.
국회에서 진작에 개정법안도 만들고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누가 역사의 죄인인지, 피해자의 내역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생존자의 증언이라도 확보하려면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
반면 이태원 참사도 그러하다. 한 번씩 태풍이 불 때마다 별 상관도 없는 사람까지 죄다 끌어들이는가 하면 정작 참사 발생의 주 원인자를 슬그머니 빠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힘이 있다고 빠지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사소한 관련성도 확대하여 트집을 잡으면 사건 진상규명의 원인만 흐려진다.
돌이켜 보건데 조선시대 이전에도 억울한 죽음은 많았다. 전쟁터에서도 이념대립으로 인한 내전으로도, 자연재해나 질병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떼 죽음을 당한 적은 숱하게 많았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역이나 역모죄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얼마 전 국회에서 재론된 코로나19 방역의 오염백신 사태만 해도 그러하고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전문성,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지금도 망자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결론을 짓자면 제주 4.3 항쟁은 도서, 영화, 다큐, 진상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그 원인에 대한 논쟁도 마무리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아픔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원칙도 정해져야 하며 권력 이동에 따라 진실이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현대판 사초의 역할을 담당할 부서를 마련해야 한다.
임금의 어명에도 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작성하는 사초, 실록은 그랬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권력자의 입맛대로 소설 쓰듯 찬양 일색으로 쓰여 진다면 그건 홍보물에 불과한 것이지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일부 양심 있는 학자들이나 언론인들이 객관적 견해로 기록을 남기는게 전부다.
그래서 모든 정기 간행물은 국립 도서관에 납본을 하는 것이고 지역뉴스까지 보관되어 훗날 참고자료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권하게 되었는지, 전 정부가 어떤 과오로 영어의 몸이 되고 한순간 계엄령으로 몰락했는지가 진실되고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필자는 매일 글을 쓰고 언젠가 시대가 변하고 후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도록 있는 그대로 남기는 것이다. 직필은 사람의 박해를 받고 곡필은 하늘의 천벌을 받는다 했던가. 권력적 봉쇄형 소송으로 입을 막는다고 소리는 멈출 수 있으나 글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덕암 김균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