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이제는 말할 수 없다.
2026.07.07 13:45:55

1999년부터 2005년까지 6년간 mbc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았던 시사 100부작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완결된 바 있다. 당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과거사를 꺼내는 내용으로 안방극장의 대표적인 주목을 끌었다.
권력의 그늘에 가려져 알려지지 못했던 일들이 시간은 지났지만 재 조명되면서 억울했던 누명들도 벗겨지는 등 권불십년의 증거가 되기도 했다. 이미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이제는 말 못할 일이 없는 세상이 되는 줄 알았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면서 문화예술은 물론 경제, 국방, 외교, 종교, 복지 등 모든게 투명하고 밝아지면서 어둠은 걷히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다. 군사 독재도 끝나고 언론의 자유도 생기면서 정의가 살아있고 부패한 관료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줄 그리 알았다.
2006년부터 인터넷뉴스를 창간하여 사진과 글을 올리는 취재의 열정은 마치 세상 정의를 다 지적하고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각오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어떤 지방자치 단체장이 취임하자마자 특정 지역에 화장터를 만들고 추모공원을 건립하겠다며 형식적인 후보지를 들러리고 세우고 불법적 강행을 하자 해당지역 주민들이 꽃상여를 만들어 비가오나 눈니 오나 반대집회를 했다. 집권 초기 감히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바로 잡고자 나섰다가 호된 대가를 치렀다.
필자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똘똘 묶어 고소하는가 하면 하수인이던 기자는 교묘하게 파놓은 함정으로 끝내 필자를 법정에 세웠다. 허위 자백서를 요구했고 안 쓰면 가족을 모두 몰살시켜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정론보다 가족이 생명이 중요했고 그래서 쓴 사실확인서가 증거가 되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1심을 뒤집는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행정광고비에 길들여진 동종 업게 기자들의 집단 괴롭힘은 요즘 흔히 말하는 학교 1진들이나 다를바 없었고 셔틀 역할을 거부하던 필자의 동선과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 들었다. 공보담당관은 행정광고비로 기자들을 길들여가며 기분에 따라 술집 접대부 팁 주듯 뿌리며 친분을 쌓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4년 동안 특정 시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가니 이제 더한 시장이 집권했다. 평소 놀러 다니기를 즐기던 이 양반은 취임하자 마다 2년 동안 13번이나 해외로 다니며 시정은 아첨꾼한테 죄다 맡기니 고을이 시정잡배들과 부패 관료들이 서로 해 먹으려 난리를 친다.
선거 운동하던 한량이를 요직에 앉히지 그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하고 시장역할을 하던 똘마니가 이리 저리 업자들과 해먹거나 필요없는 부동산을 매입해서 혈세를 낭비해도 전혀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다. 물론 이를 가만 둘리 없던 필자가 나섰다가 이제는 대법원까지 상고하는 곤욕을 치르고서야 겨우 마무리됐다.
있는 사실을 증거까지 확보하여 정확히 작성해도 명예훼손죄와 정보통신법이 적용되는 법원의 판결, 눈빛을 마주보지 못하고 판결문을 읽는 판사를 노려보며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얼마나 형평성을 잃었는지, 로펌의 거래선이 되었는지를 확연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나날들,
허위사실을 강요하고 범죄사실도 확인 없이 경찰의 수사를 몇 번이고 돌려보내며 결국 임의로 약식명령을 때려서라도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검사, 그래서 검수완박을 선호하게 된 필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일명 권력적 봉쇄형 소송은 돈으로 수임된 로펌의 막강한 변호능력과 싸워야 한다.
그러니 해보지도 않고 써보지도 않고 함부로 정론질필이니 언론의 길이 어쩌고 하는 수식어는 신중히 지껄여야 한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세계언론지유지수를 보면 2010년 42위, 2014년 57위, 2018년 70위를 찍었다가 다시 2022년 43위, 2026년 47위로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던 2025년은 61위였다 1년 후 2026년 다시 47위를 회복했는데 이는 14단계나 올라간 것이다.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국은 47위 북한은 175개국 중 17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랬다 표현의 자유가 있고 세게
말할 수 있는 시대에도 이러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시대로 가고 있느니 더 말해 뭐하랴. 유튜브들의 동영상 플레폼이 한 몫한 것이다. 한국은 47개 이상의 방송사와 220개 의 일간지를 보유한 풍부한 미디어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네이버 유튜브 등 동영상 플렛폼에서 정보를 취득한다.
그동안 방송과 신문이 제 목소리를 냈다면 그래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을까. 하나 둘씩 문닫는 방송국이 정녕 남의 일일까. 아니면 독자 없는 신문에 의존하며 언제까지 중앙지라는 브랜드에 기약없는 각자의 미래를 걸고 있는 것일까.
미리 준비하지 못해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에게 시장을 빼앗겨버린 뒷북을 오늘부터 시작되는 정보통신법이 어느 정도 만회해줄 걸로 착각했다면 더욱 비열한 기대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신뢰의 벽돌로 굳건한 성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필자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정론이란 없다. 원칙이란 없는 것이고 시대에 걸맞게 적절히 언론이라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입바른 소리하는 로컬 뉴스들 죄다 행정광고 막아서 스스로 폐간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한푼 이라도 더 챙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몇몇 방송과 신문사만 담합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진정한 언론의 지적과 홍보 기능이 살아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답이라면 떠나야 한다. 노르웨이 1위 네덜란드 2위 덴마크4위 스웨덴 5위로 가서 연어잡이 공장에서 연어포를 뜨더라고 저녁이면 자유로운 키보드를 두들길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까지는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덕암 김균식
심수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