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오늘의 번영은 누군가의 희생
2026.06.05 14:27:27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번영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이룩한 것이다. 아니라고 말할 사람 없다. 그러고도 굳이 부인하거나 잊거나 관심이 없다면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누가 각자의 소중한 목숨을 국토수호에 바칠까.
애국애족 호국정신이 먼 나라 구호일까 아니면 언제든 닥칠지 모르는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것일까. 지리적으로 언제 다시 전란이 발생할지 모르는 한반도의 안전은 지구촌 어느 국가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험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에 몹시도 시달리고 뜯긴 바 있으며 외란 외에도 내란으로 죄 없는 백성들만 곤혹을 치른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금의 애국가도 태극기도 모두 광복이후에 제모습을 갖춘 것이지 약소국가로 명백만 겨우 유지하던 조선은 역사에 비해 참으로 안일하게 국정을 운영해 온 바 있다. 어쩌다 인재가 등용되면 기존의 패거리들이 누명을 씌우거나 들들 볶아서 퇴출시키거나 멀리 귀양보내서 자신들의 먹이사슬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니 이 나라가 발전이 안되는 것이고 운이 좋아 훌륭한 임금이 왕권을 잡았더라도 독살 내지는 역모로 반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는 이쯤하고 현실적으로 인간의 본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 했다.
하늘 아래 땅위에 내가 있어야 우주가 있다는 뜻인데 남의 심장 썩는 것은 몰라도 내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은 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지금이야 사소한 접촉사고만 나도 목을 잡고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어쩌다 주먹질로 멍만 들어도 진단서를 근거로 고소가 남발한다.
누구나 자신의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은 어지간히도 예민하다. 조금 더 확대해서 폭력배로부터 집단으로 맞아보면 안다.
3분만 맞아도 어디 하나 부러지고 터지고 자칫 장애가 남을 수 있다. 폭력이란 사람을 무력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왜 맞고 사느냐라든가 신고하라든가 하지만 막상 맞아보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 노예 정신이 생기고 복종하게 되며 더 맞을까 두려워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다. 얼마나 비굴해지고 생존본능에 악착같아지는지 겪어보면 안다.
어쩌다 칼침이라도 맞으면 맞을 당시 정황이 없어 따끔하고 말지만 상황이 끝나고 보면 피로 얼룩진 상처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수 백 번도 맞아보고 덜 맞기 위해 맞은 맞큼 패본 경험을 비춰볼 때 제 아무리 잘난 척 하던 인간도 폭력 앞에는 무력해지고 비굴해진다. 각목이나 쇠파이프, 칼이 이 정도라면 총은 어떨까.
필자가 군복무 시절 M16으로 사격훈련을 하는 과정에 실탄의 위력을 자세히 교육받다 보면 6.25 전쟁 당시 M1 소총으로 싸우던 군인들의 심경을 100/1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 M16은 처음 방아쇠를 반자동을 해 놓고 당길 때만 땅땅거리며 고막을 두드리지 자동으로 쏴보면 충격만 클 뿐 총소리에 대해 둔해진다.
탄두가 뚫고 들어가는 입구는손톱보다 작지만 총알이 총구의 나사형 총신을 떠나는 순간 회전력이 더해져 나가는 방향은 다 헤집어 놔서 상처가 매우 커진다. 전쟁은 적당히 싸우다 마는 동네 양아치들의 패싸움이 아니다. 전쟁은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멋있거나 용감하거나 승리로 끝나는 드라마가 아니다.
필자 또한 전쟁을 겪어보지 못 했지만 인간이 고통속에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그리고 온몸에 피멍이 수 백 차례 들어본 경험을 비춰볼 때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군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 분들이 지금 국립묘지나 DMZ 비무장지대 어느 야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70년이 넘도록 흙이 되어들어 계신 것이다. 국군도 연합군도 그리고 중공군이나 북한 군인도 서로가 원수진 일도 없는데 전쟁이란 명제 속에 대검으로 찌르고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과이란, 이스라엘과 이란, 등 외전은 물론 시리나, 필리핀, 등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생존의 본능 속에 괴로워하고 있다. 마치 한국은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것으로 오판한다면, 그래서 설마 한다면 그것처럼 위험하고 안일한 처사는 막아야 한다.
우리가 외국의 전쟁을 강건너 불보듯 하듯이 외국도 한국전쟁에 관심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포성이 시작될 때 브리질 축구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도 함께 허공을 향했다.
만약 2026년 국민들의 갈등이 내전으로 번져 남북 간에 전쟁이 발생해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전시상황에서 상관이 돌격 앞으로 명령하면 목숨을 걸고 적의 진지를 향해 약진 포복으로 자세를 낮춰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인간의 고통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는 것은 제 아무리 국가를 위하네 국민을 위하네 해도 정작 정부 요인들은 지하벙커에 숨어 입만 나불거릴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총 들고 전선에 나가 싸우는 군인들의 군기나 사기를 더는 죽이지 말아야 한다.
태극기나 한글이나 애국가나 그 모든 게 절로 얻어진게 아니다. 미국 워싱턴과 뉴저지지역을 순방했을 때 모든 기관이나 집집마다 성조기가 내걸린 모습을 목격했다. 한국은 국경일에도 걸지 않는 태극기가 쪽팔려서일까 귀찮아서일까. 내일은 제 70회 현충일이다.
가까운 충혼탑이라도 가서 일가친척이 아니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호국영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자. 그게 사람의 도리요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적어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나라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것이며 화려한 옷 입고 화장과 미용으로 도배한다고 속내까지 가꿀 수 는 없는 것이다. 승용차를 타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고 다 인간은 아니다. 문명은 외형을 가꾸지만 힘들었던 운명은 내면을 키우는 과정이 된다.
생명부지에 생소한 한국땅에 와서 연합군이라는 명분으로 목숨을 바친 외국군인들이 명복을 빈다. 그리고 젊은 청춘을 나라에 헌신한 한국 국군에게 깊은 추모의 예를 올린다.
그리고 청소년나이에 군번줄 없는 군인이 되어 목숨을 바친 학도병 선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적어도 적과 아군은 구분하자. 이 땅에 수 백 만명이 쳐들어와 힘없고 죄 없는 국민들을 학살한 중공군이나 북한군의 명복까지 빌 수는 없다.
덕암 김균식
김균식 덕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