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참교육이 주는 메시지
2026.06.16 14:19:32

최근 네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드라마 중 참교육이 인기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 뿐만 아니라 어떤 영화든 1위를 고수할 수 있는 이유는 관객들의 공감대를 사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공감대, 함께 느끼는 감동, 개인적으로 감독을 맡은 홍종찬 감독과 이남규 작가의 각본에 박수를 보낸다.
교육부 장관역을 맡은 이성민 배우, 나화진역을 맡은 김무열 배우, 진기주, 피오 등 출연진들의 열연으로 더욱 실감을 더한 참교육은 한국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극화 함으로써 스스로 찔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함은 모든 관객들이 알고 있다.
딱히 누구라 하지 않더라도 제자식 만큼은 잘 가르쳐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들어가 한평생 편하게 살게 하려는 부모의 욕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그렇지 못했던 학부모들 세대에게 사이다 반응을 얻었다.
물론 누군가는 불편하겠지만 특정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학교라는 특정 단체의 구성원들인 학생이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논리는 이제 비판의 도마위로 올려져야 한다.
영화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대신해 주기도 하고 때론 역사적 사극을 전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의 모순에 대해 강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왕과 사는 남자”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으며 왜 1,7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이 제 발로 찾았을까.
공감대다. 이번 참교육 또한 마찬가지로 영화가 던지는 문제점과 속 시원한 해결점은 다소 비 현실적 시나리오가 엿보인다. 문제는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어쩌면 더하면 더 했지 덜할리 없는 한국 공교육의 적나라한 현 상황에 대해 과연 교권보호국 감독관이라는 직책이 가능할까.
여기서부터는 상상이다. 비현실적 상상, 힘없는 학생들도, 가난한 학부모도, 촉법소년들과 마약 거래와 도박으로 얼룩진 모든 사건들은 충분히 묘사되고 있으나 대안은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감독과 출연진들의 열연으로 지금 당장은 어쩌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고관대작들의 자식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는 세상,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교육 교사가 사설학원에 문제를 팔아먹다 걸려도 뉴스에 몇 일 오르다 마는 게 아니라 사법기관의 성역 없는 수사로 문제점을 제대로 파헤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작으나마 사는데 지장 없고 호의 호식 하진 않더라도 가족과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경험은 그래서 중요하다. 필자 또한 학창시절 당시 선물에 약한 담임교사가 아부에 강한 학부모와 결탁하여 필자가 취득한 자격증을 바꿔치기한 사건이 있었다.
같은 반 급우가 항의하자 매타작으로 끝났는데 졸업 후에도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엉뚱한 실습 교사한테 수 십 대의 뺨을 맞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학생들의 뺨은 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하며 잡아 늘여도 되는 시대가 있었다.
여학생들의 브래지어 끈을 잡아 늘이고 치마를 들추며 아이스 케키를 해도 장난이었던 시대, 항문을 손가락으로 찔러도 똥침이라며 농담으로 치부되던 시절.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올라타며 놀아도 놀이로 치부되던 시절은 학생들 간에 정이라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 위에 군림하며 당일 기분에 따라 학생들을 감정실어 패도 문제가 안되던 시절,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아도, 머리를 땅에 박고 손을 등에 붙여도, 화나면 시계를 풀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려도 되던 시절, 그런 시절의 억하심정이 쌓여 제 자식 만큼은 귀하게 키워야 겠다는 학부모들의 의지가 학생 인권조례를 낳은 것이다.
누가 누굴 탓하랴 모두 굴레다. 교권이 추락 하는데는 학생들의 인권 보호 조례가 낳은 부작용이고 학생 인권조례의 배경에는 과거 교육계의 폭력적인 훈육 전례가 있었기에 생긴 일이다. 돌이켜 보건데 지금의 50세 이상 기성세대들에게 교사의 권위에 대해 논하라면 그리 좋은 평가는 듣기 어렵다.
60대라면 더할 것이고 70대는 하늘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콩나물 교실에 학부모들은 자식 맡긴 죄로 설설 기었을 것이며 과일 쥬스라도 사들도 쫒아 다니는 극성 학부모나 사회적으로 권위있는 직종의 학부모라면 그 뒷배가 주는 무언의 압력은 만만찮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배경이 없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학교 교칙보다 인맥이 앞서는 학교에서 일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느껴야 할 위화감이나 피해의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참교육 드라마의 소재는 권력이 교육에 끼치는 악영향과 그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저출산으로 인해 극성맞은 학부모의 과잉보호는 물론 현실적인 마약과 인터넷 도박, 여학생의 원조교제까지 적나라한 속살이 드러났다.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공교육의 문제점 못지않게 해결책의 속 시원함에 대한 대리만족일 것이다. 사실 공교육의 현실적인 문제점은 태산처럼 방대하다.
교육현장 외에 사교육, 학부모, 갈수록 교묘해지는 음지의 유혹,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착취 등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한데 그 한 가운데 어디에도 열쇠가 없는 방안에 갇혀 있는게 2026년 청소년들이다.
겉으로 웃으며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면 방법과 대안을 찾아주는 건 기성세대들의 필수적인 숙제가 아닐까. 2025년 12월 기준 대한민국 학생 수는 중, 고등 40만 명 후반대, 초등은 40만 명 초반대지만 초등학교로 갈수록 30만 명에서 20만 명대로 집계됐다.
달리기로 말하면 다음 주자에게 바턴을 넘기려 해도 선수가 없다. 드라마 속의 참교육이 현실이 되어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년 간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이 헛되이 쓰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았던가. 군사부일체라 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2025년 한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10대 청소년들이 400명이나 됐다. 잠재적인 위험군까지 포함하면 현재 공교육의 상황은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시청률이 높은 것이다. 정부에서는 뒤늦게 수습한답시고 관련 예산을 늘인다고 한다. 돈으로 막아질 일은 아님에도.....
덕암 김균식
심수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