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영화의 영향력과 사명
2026.10.01 14:57:43

최근 영화 “암살자들”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내용을 떠나 일단 화제가 된 것만으로 흥행은 성공한 셈이다. 어쩌다 영화가 이념과 사상의 전쟁터가 되어 각자 다른 견해와 잣대로 재는 바람에 흥미와 가치가 뒤섞이는 난장판이 됐다.
이 같은 논쟁은 이미 기존에 개봉된 영화 중에서도 진작부터 갑론을박이 많았다가 이번에 제대로 터진 것이다. 먼저 영화란 말 그대로 은막 위에 영사기를 돌려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돋우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종의 문화예술이다.
그러함에도 이러한 본질을 벗어나 대중들에게 여론조성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이는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형태의 선전 선동에 가깝다 할 것이다.
필자는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에 대해 매니아 층도 아닌 평범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가 국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왜 엄격한 심의가 필요한지를 논하고자 한다.
먼저 이번에 개봉된 영화 “암살자들”은 기존에 있었던 사실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건에 감독의 상상력을 동원해 본질을 왜곡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비난을 샀다.
마치 과거가 선명한데 그 과거를 토대로 임의적 시나리오를 삽입하면 선명한 과거와 불 확신한 미래가 뒤섞여 진실이 왜곡될 수 도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미 국민의 힘 의원들이나 유튜버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이러한 심각성에 대해 집중보도에 나섰고 많은 관객들도 흥행을 위해 위험한 도전을 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영화의 내용 중 광복절 행사에서 숨진 육영수 여사의 죽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관여된 것으로 비춰지는 시나리오는 이미 망자가 된 고인의 명예와도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어쩌다 영화가 좌파 우파, 이념적 갈라치기의 수단이 되고 말았을까.
이제 영화조차 감독의 의도가 영화로 인해 잘못 인식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까지 검토해가며 봐야 하는 시점에 도래했을까. 이래서는 안된다. 적어도 영화는 장르별로 많은 감동과 환희, 때로는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비현실적 공간과 설정도 모두 허용되는 분야다.
그렇다고 있었던 사실과 있지도 않은 일을 뒤범벅 해서 아닌 걸 맞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유도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 의도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에 상영되었던 5.18 관련 택시 운전사나 자유 우파들에 대해 분노를 충동질하던 영화들이 여러 편 있었다.
특히 일본의 전범 여지에 대해서는 과장을, 중국의 한반도 침략이나 흑역사에 대해서는 축소를 소재로 삼았던 과거가 있었다.
이 또한 편협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 없었고 한 편의 영화가 수 십권의 역사책보다 더 쉽고 깊게 뇌리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이념적 갈라치기를 자행하는 결과에 봉착하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내용을 있는 것처럼 꾸민 영화, 자칫 판단의 오류와 그 오류로 인한 인식의 자리매김은 쉽게 바로잡을 수 없는 세뇌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미 언론에서 유사한 오욕의 흔적을 선행한 바 있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건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마구잡이로 보도해 놓고 막상 진실이 드러나면 오보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보다 정정 보도도 아니고 “바로잡습니다” 또는 “반론 보도”로 짧게 법망을 피해 가는 회피 수법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정작 그 보도로 인한 피해자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이 이사회에서 영영 나락을 길로 접어든 사건이 숱했다. 영화가 영화를 넘어 아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수단이 된다면 그래서 기존의 기성세대는 물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오판을 심어준다면 구 책임은 누가 질까
감독, 배우, 제작진이나 협찬사, 한국 영화 진흥공사, 아니면 흥미진진하다고 믿고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관객? 그 누구도 안진다. 모두 한번 보고 느끼거 인식되면 그만이다.
그동안 박근혜 전대통령을 세월호와 관련하여 시동을 걸었다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거쳐 탄핵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진실과 무관한 선동을 벌였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과오 중 과는 덮어버리고 오만 확대해석하여 악마화 했던가. 결국 고인은 아직 무덤조차 찾지 못하는 역사적 오명을 남겼다.
특별한 제동장치 없이 영화가 대중선동의 수단이 되는 강풍은 사정없이 쏟아졌다. 한 번씩 극장가를 강타할 때마다 대중은 진실보다 흥미에 이성을 잃었다. 이쯤에서 선진국 영화와 비교해볼 수 있는데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수상을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간혹 빛을 보는 영화는 대부분 한국의 멋과 맛이 살아있는 경우지 이번처럼 여론의 찬반이 엇갈리는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암살자들”은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 됐다. 당초 어떤 의도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안다.
하지만 대중들이 과거처럼 보여주는 대로 믿지 않는다는 점과 영화로 인한 폐단이 교육적 부작용까지 있음을 알려주는 계몽편이 되고 말았다. 적당히 하면 몰랐을 일을 과하다 보니 넘친 것인데 그럼에도 보는 사람은 보고 그러든 말든 만드는 사람은 만든다.
어디 영화뿐이랴 도서, 만화, 각종 대중 매체들이 저지른 역사 왜곡은 도처에 널려있다. 어찌 일일이 맞고 틀리다 를 구분하며 접할 수 있을까. 문제는 진실이 묻힌다는 것과 역사적 오류가 번복될 때 오는 시대착오적 개념이 미래까지 망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연속된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누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누가 성실하게 일해야 잘산다고 믿고 노력할 것인가. 어떤 대통령이든 사회적 지도자든 임기를 지내는 동안 모두 옳은 일만 할 수는 없다.
마치 의사가 암을 제거하는 과정에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경제부흥의 주역 박정희, 격동의 시기에 국가를 위기에서 구했던 전두환, 치산치수로 4대강 사업을 벌인 이명박과 혈세로 만든 보를 철거하는 문재인,
반대로 북한에 퍼주기를 한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는 영웅이 되었고 코로나 19로 실정이 덮혀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2026년 9월 29일,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시 된 채 판결을 기다리며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재판을 미루며 사법부와 정면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 것이며 영화는 또 어떤 조명으로 본질을 흐릴까.
영화라는 장르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신뢰란 무너지기 쉬워도 다시 회복하기에는 수 십 배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안방극장 공중파가 무너진 걸 보면서도 바깥극장 영화계가 뒤를 잇고 있다.
덕암 김균식
심수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