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프랑스의 새벽닭
2026.10.12 14:16:43

프랑스에 난리가 났다. 고등학생들이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며 시작된 시위에 당국의 강력단속으로 발단이 되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번 집단행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고 참다 못한 학생들의 분노가 도화선이 되어 교사는 물론 교육 관계자들까지 합세하는 분위기다.
단순한 요구에 힘으로 누르려는 정치인들의 안일함이 불러온 참사다. 여기서 한국의 공교육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한국은 프랑스와 견주어 볼 때 가히 천국이라 할 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2026년 105개국, 1501 대학교를 대상으로 평가한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가장 대단하다는 서울대가 66위, 연세대 97위를 제외하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한국의 대학교가 얼마나 처참한 점수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카이스트도 339위로 한국 대학 10곳이 겨우 500위권 안에 들어왔다. 대부분 미국과 영국이 차지한 대학순위에서 프랑스 psl 대학이 28위를 기록했고 에코 폴리테크니크 대학이 41위를 찍었다. 둘 다 한국의 대학을 앞질렀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나타낸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왜 들고 일어 났을까. 그리고 막는다고 막아질까. 한창 자라는 10대 청소년들의 욕구와 의지가 경찰이라는 옹벽에 무너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대화로 풀고 아이들이라고 무시하는 관점부터 고쳐야 한다.
한창 겁 없이 자라는 청소년 들이다. 이들은 향후 프랑스의 주인이자 그 다음 세대에게 찬란한 현대사회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계층이다. 마치 이솝우화에서 비롯된 속담 중 하나인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과 같이 권력으로 입을 막는 시대는 이제 구시대적 유물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치고는 대단한 기록이다. 반면 한국은 그 어떤 고등학교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불만으로 집단 시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배경에는 막대한 교육예산에 학부모들의 강한 교육열은 사소한 민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만큼 철저히 학생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완비 되어 있다.
프랑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단한 인재들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재능을 찾는 노력을 하지만 대한민국은 최상의 환경 속에서도 명문대 졸업장만 따면,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학벌 위주의 카르텔에 기대어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간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러하고 그런 현실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다. 어쩌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근면 성실하기로 명성이 높았던 대한민국이 가장 게으르고 안일하고 이기적인 국민으로 바뀌었을까.
하마부터 배가 불러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힘든 일을 전가 시키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놀고 먹을 수 있는 선진국에 진입한 것일까. 너무 빠르다. 풍성한 결실이 맺기도 전에 설익은 과실을 너무 빨리 따 먹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배 아플 날이 온다.
대한민국 보다 훨씬 더 잘사는 유럽국가들도 아낄 건 아끼고 근면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이다. 말로만 한다던 교육정책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학교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학교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 1명을 놓고 교사, 양호, 급식, 예체능, 시설, 행정, 온갖 명분으로 여러 명이 뜯어먹고 사는 구조는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년 간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소진 시킬 수 있는 지출 내역을 만들어 이듬해도 편성 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현 시스템은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세계 대학순위 문턱에도 못 올라가는 현주소를 알고도 입시 중심의 교육방침이 바늘구멍으로 낙타 몰이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우리나라 국민들의 DNA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전후 세대인 50-60년대 출신들이 증명했다.
콩나물 교실에서 학급당 60명이 지엄하신 선생님들의 학습방침에 매를 맞아가면서도 공부한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척추 역할을 하는 중심이 된 바 있다. 그러니 지금의 학생들이 이처럼 훌륭한 교육환경에 인재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막대한 예산, 부족함 없는 환경, 그러함에도 왜 낙제점 대학으로 종결될까. 문제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 유지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교육계의 카르텔이다.
한 번 만이라도 국정감사나 특검을 통해 지출 내역을 촘촘히 파헤쳐 부실한 부분에 대해 예산을 삭감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생을 한국에 입국시켜 지금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반대로 한국 학생을 프랑스 교육환경에 배치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빈부격차로 인한 교육환경의 격차, 전기도 제때 안 들어오고 화장실에 휴지도 없는 교실, 유리창이 깨져 나무판자로 대신한 교실, 학교의 건축 연한은 평균 50년, 교사 부족으로 몇 개월씩 수업이 멈추는가 하면 갈수록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 하는게 현실이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의 2위 경제 대국 프랑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나라 운영을 제대로 못하니 돈이 딸리는 것이고 교육환경이 함께 열악해진 것인데 수습할 길이 전혀 안 보인다. 비교 하건데 지금 대한민국 교육환경은 인재양성의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앞서 거론했듯이 문제는 교육방침이다. 현재 프랑스는 10대 학생들의 외침으로 고요했던 아침이 요란하다. 새벽 닭이 밝은 아침을 바라지만 정부는 모가지를 비튼다. 그런다고 날이 밝지 않을까. 과거 대한민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한 계층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지만 도화선은 대학생들이었다.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2030 세대들이 또 다른 독재를 우려하는 항거가 잇따르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했다. 광복이후 변함없는 입시지옥문이 대선되지 않는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변화와 발전을 공감할 때 교육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 디딤돌이 되어야 할 정치가 가장 걸림돌이다. 어째서 공정해야할 교과서가 좌파사상의 교본이 되어갈까.
덕암 김균식
심수연 기자






